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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사 회고] 너무 좋은데, 퇴사합니다.
    회고 2023. 3. 1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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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퇴사는 처음이라...

    나는 오늘 퇴사했다.
     
    '퇴사'라는 단어는 나에게 참 어색하다. 그동안은 실습, 인턴을 하며 예정된 끝이 존재했었다. 그래서 항상 회사를 떠나는 것이 당연했고, 때로는 드디어 끝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마치 방학을 기다리는 학기 중 학생 같았다.
     
    정해진 기간이 없는 정규직으로서 일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으로 달리던 것을 나 스스로 그만두어야 했다.
     
    퇴사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왠지 이 회사에서 나의 마지막 업무처럼 다가왔고, 이 업무 또한 잘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고민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막상 닥치면 본능대로 하게 된다.
     
    그동안 일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몇몇 분께서는 아쉬워하며 선뜻 커피를 사주기도 하셨다. 커피 한 잔과 어쩌면 빈말일지 모르는 아쉬움 속에 큰 감동과 감사함을 느꼈다. 머릿속으로는 많은 생각들과 말이 존재했지만 막상 감사하다는 말만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게 내 진심이었던 것 같다.
     
    훈련소에서의 동기들과 헤어질 때, 여자친구와 헤어질 때, 오랜 친구가 타국으로 떠날 때 등 지금까지는 사람과의 헤어짐을 경험했다. 회사와 이별은 처음이다. 
     
    단순히 회사는 돈이라는 물질을 제공하고, 나는 노동을 제공하는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 이상의 감정을 나는 가졌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나를 뽑아주고, 사수(제도는 없지만)가 마지막으로 슬랙 공개 채널에 글을 남겨주셨다. 감동이었다.
     
     

     


    2) 너무 좋지만, 퇴사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퇴사할 때는 무언가의 불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봉, 복지, 근무 환경 혹은 업무적인 불만이 있을 것 같다. 꼭 회사뿐만 아니라 어떠한 집단에서 나오게 되는 것은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의 불만으로 인해서 퇴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회사가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심지어 재미있었다. 20명 남짓한 인원에서부터 80명까지 회사가 성장하는 경험은 어디서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성장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하고, 행운이다.
     
    그래서 퇴사여부를 끝까지 고민했다. 불만이 없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고, 불필요한 정치도 없었다. 그저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한다.
     
    퇴사한 회사는 B2B 핀테크 비즈니스를 한다.
     
    내가 생각하는 핀테크의 정의는 이렇다. 뿌리 깊은 전통 금융을 기술로서 쉽게 풀어내어, 일반 사람들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 회사는 법인사업자가 법인카드를 발급받는 것에 있어서 매우 불편한 지점들을 잘 공략했다. 법인사업자가 2년 치 재무제표, 사업자등록증, 잔고증명서 등등 종이 서류를 힘들게 챙겨서 카드사에 방문해야 했다. 심지어 올해 개업하여 2년 치 재무제표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불편한 점을 기술로서 매우 잘 풀어냈고, 법인사업자는 더 이상 불편하게 종이 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신청만 하면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아쉬웠다. 결국 최종 발급은 기존 카드사에서 이루어졌고, 전통 카드사가 제공하는 시스템 연동 방법은 매우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었다. 항상 "더 좋은 방법이 많은데, 왜 바꾸지 않지"라는 생각이 지속됐다.

    단적인 예로 금융권에서 '전문 통신'이라고 일컫는 것은 양방향 socket 통신으로 되어 있다. 항상 불안정하게 연결을 유지했어야 하며, 리소스는 낭비되었다. 왜 API 통신을 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됐다.
     
    수많은 핀테크 회사들이 금융을 혁신했다고 하지만 사실 금융은 여전히 그대로다. 마치 인터페이스(interface)처럼 추상화하여 제공할 뿐이다. 여전히 전통 금융의 구현체는 그대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전통 금융을 기술로서 풀어내는 것이 아닌, 전통 금융 시스템 자체를 바꿔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뿌리 깊은 진짜 금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B2B보다 더 많은 트래픽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금융이라는 엄격한 도메인을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롭게 이직하는 곳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곳이다. 현재는 전통 금융 시스템으로 되어있지만, 현대화된 IT 기술로서 기존의 아키텍처를 변경하는 것에 집중하는 곳이다. 그래서 해보고 싶었고, 퇴사한다.


    3) 극단적으로

    전 회사에서 입사하며 받은 굿즈들이 있다. 텀블러, 우산, 후드, 스티커 등이다. 다들 참 예뻤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극단적으로"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였다. 왠지 모르게 보자마자 가슴이 두근 했고, 나의 인생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같았다. 노트북에 붙여두고 일할 때마다 되새기고는 했다. 
     

     
    나는 "극단적으로"를 이렇게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나의 모든 것을 투입하여, 극단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아주 작은 여러 개의 성과보다는 정말 세상을 바꾸는 큰 성과를 만들어내고 싶다.
     
    앞으로도 그랬고, 새로 가는 회사에서도 극단적으로 일해보고 싶다. 때로는 지치겠지만 항상 "극단적으로" 정신은 잃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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